Lester's IMAO/게임 이야기

#2 - 게임과 나(2) : 학교와 오락실, 책상 앞

Lester/이홍기 2018. 7. 24. 18:14
게임과 나(2)


작성 : 이홍기(http://blog.daum.net/zzang2314274)




그 때는 '바보 상자'인 줄만 알았지, 컴퓨터의 첫인상

컴퓨터를 가장 최초로 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이제는 워드 1급이 자격증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그 시절에는 정보화 사회라는 것이 전파되던 시기(아니, 이미 보급되었다만 내가 너무 늦었을지도)라 학교나 복지관에 컴퓨터 교실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컴퓨터에 대한 첫인상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철없이 게임기로 생각했기 때문일까. 컴퓨터 공부를 위한 교실인만큼 게임은 허락되지 않았고 할 수 있는 거라곤 DOS 기반에서 구동되는 한컴타자연습 혹은 한메타자교사(그 두 가지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밖에 없었다. 물론 공부를 지겨워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침략자란 게임이 내장되어 있었는데, 좌우로 움직이며 천천히 전진해오는 단어 군단을 정확하게 타이핑하여 하나씩 제거해가는 모양이 영락없는 스페이스 인베이더(이름도 인베이더를 직역한 '침략자')의 변형이었다. 하지만 보너스 단어를 입력하면 전진을 멈추거나, 처음 위치부터 시작하는 메리트가 있거나 단어가 가려지거나 갑자기 몇 줄 전진하는 페널티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법 훌륭한 게임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처음엔 컴퓨터에 대해 시큰둥했지만, 어머니를 졸라 사거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는 형님으로부터 빌리는 식으로 컴퓨터에 관한 책들을 읽게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빌 게이츠 만화 위인전에 나오는 윈도 3.0, 그것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나 다른 프로글매들, 인터넷과 그 예시로 소개된 온갖 문화를 다루는 홈페이지들. 그 때는 공부를 싫어하는 꼬맹이였던지라 글은 빼고 사진만 계속 봤는데, 그 때 했던 생각인 '나도 이런 걸 만들고 싶다'는 게 지금의 나를 만든 거대한 기둥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컴퓨터를 계속 만질 수 있었지만 DOS가 윈도 95으로 바뀌고, 책으로만 접해서 판타지로만 생각했던 인터넷이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다가와 있다는 걸 몰라서 X팔렸던 사실만 빼면 바뀐 건 없었다. 다만 인터넷으로 실시간 대화를 나누던 채팅은 엄청나게 신선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 때는 컴퓨터가 대답을 하는 거라고, 영락없이 오늘날의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도 사실을 알게 된 뒤엔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지만.

그렇게 초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자, 우리나라 게임계의 대격변을 '지켜보게' 되었다(경험한 게 아니라 지켜본 이유는 후술한다). 바로 PC방이 등장한 것이다.

아케이디안 나이츠(Arcadian Nights), 오락실

초등학교가 끝나고 올라오는 길목의 정확히 한가운데에 있는 건물, 그 곳의 3층에 있는 도깨비 PC방. 내 인생에 PC방이라는 것을 접한 때는 그 때가 최초였다. 다만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PC방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PC방마다 깔려있었던, 우리나라를 무슨 괴수급 게이머들이 우글거리는 지옥(?)으로 알려버린 스타크래프트(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1998)가 정작 나에게는 큰 감흥을 주지 못해서였을까? 배틀넷으로 사촌들과 밀리 한 판을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싱글 플레이에서의 치트를 썼다가 모두에게 채팅을 때린 것이 굴욕으로 남아서였을까? (아, 그 순진함이여...)

지금 생각해보면 전자였던 것 같다. 중학교에 가기 전까지 PC방에서 했던 게임이라곤 상술한 스타크래프트와 레인보우 식스 1편(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 1998),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국산 최초의 3D 머그 게임이라던 리니지(엔씨소프트, 1998)이 다였는데 나는 그 셋 모두 오랫동안 잡지 못했다. 레인보우 식스는 어려워서, 리니지는 지겨워서. 특히 리니지는 아주 극초창기일 때 접해서 빨갱이(빨간 물약)니 촐기(초록 물약)이니 하며 네이밍이 개판인 건 둘째치고 뭘 해야 되는 건지 몰랐던 부분이 많았다. (지금은 당연히 알지만) 고기를 처먹어도 왜 에너지가 안 차는지 모르겠고! 유일하게 재밌었던 부분이라면 거대 병정 개미 떼가 마을로 쳐들어와서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죽어나가거나 여관으로 피난을 가던 걸 재미있게 구경했던 거랄까? 그 때는 좀비 영화같은 것도 몰랐던 때(좀비 영화로서 처음 알게 된 '새벽의 저주'가 2004년작이다)라 퍽이나 신선하게 느꼈던 것 같다.

결국 PC방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나는 이사를 오기 전부터 매력을 느꼈던 오락기 앞으로 되돌아갔다. 처음에는 문방구 오락기가 있는 걸 보고 거기에만 매달렸지만,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뜯기 위한 사장님들과 '나쁜 형들'의 흉계에 뜸해졌다. 그러다 초등학교 옆과 집 근처에 오락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엔 거기로 향했다. 그 다음은 뭐... 어렸을 적에 오락실 다닌 사람들이라면 다 그랬겠지만 엄청나게 날리고(!), 엄청나게 맞았다. 부모님은 오락실에 갔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중죄가 된다는 것마냥 신명나게 매타작을 하셨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부모님이 너무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애들이 놀아야지, 공부하는 기계야? 물론 오락실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위험을 걱정하신 것도 있지만.

그렇게 문방구와 대여점(난 처음에 서점인 줄 알고 공짜로 책을 몇 권 봤다가 혼났다), 오락실을 오가며 오락기들을 접하고 다녔는데, 워낙 많은 게임들을 접해서 정리가 안 될 정도이다. 하지만 당연히 기억나는 것들이 있는데, 대부분 오락실 유저라면 명작이라고 인정할 만한 게임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에뮬레이터를 통해서 접하게 된 것들은 제외한다)
 - 캐딜락&디노사우르스(캡콤, 1993)
 - 대전! 산전수전(세가, 1998)
 - 펌프 잇 업 2(안다미로, 1999)
 - 틀린그림찾기 '98(이오리스, 1998)
 - 데이트 퀴즈 고고(세미콤 & 에이스버, 1998)
물론 이 외에도 엄청나게 있다. 다만 다 기억해 내는 것도 힘들고, 게임 하나에 썰 하나씩을 풀 수 있을 수준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그렇게 나는 PC방에는 거의 가지 않고, 오락실 순례자라 할 정도로 오락실을 발견했다 싶으면 찾아다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사건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잃어버리고, 맞고, 뺏기고... 이런 것들이 결국 오락실이 몰락하는 원인들 중 하나가 되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사건사고도 줄어들었다. 나야 당연히 슬펐다. 복수할 길 없이 당하기만 한 것도 서러웠지만, 한편으론 오락실마다 보유한 게임들이 달랐기에 오락실이 폐업하면 그 게임을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술한 에뮬레이터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에도, 에뮬레이터로 구동할 수 없는 게임들이 있었기에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슬펐다.

어쨌든 초등학교 3학년부터 들락거렸던 오락실은 장소와 하는 게임만 바뀌었다 뿐이지 지금까지도 계속 들락거리고 있으니, 과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맞나 보다. 그래서 오락실 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지만 하겠다. 지금도 오락실을 다니고 있는지라 할 이야기가 많아서인 것도 있지만, 오락실 그 자체에 대해선 더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오락실의 몰락 같은 건 다른 사람들이 이미 전문적으로 다뤘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접하다, DOS와 윈도

DOS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몇 학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초등학교엔 컴퓨터실이 두 개가 있었는데 2층은 최신식답게 윈도 95가 깔려 있었고 4층은 DOS가 깔려 있었다. 헌데 2층은 수업을 위해서 그런지 게임이 안 깔려 있었고 4층은 모조리 치우고 다른 용도로 쓸 예정이어서 그랬는지 게임이 잔뜩 깔려 있었다. 어짜피 내다 버릴 거라 딱히 관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많은 게임은 대체 누가 깔았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오락실이 게임을 '재미의 수단'으로 여긴 공간이라면, 컴퓨터실의 DOS는 게임을 '문화의 수단'으로 여긴 공간이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의 윈도 95나 98도 경우에 따라 DOS를 탑재한 곳이 많았기에 DOS게임들을 윈도에서도 즐길 수 있었다. 이 고전게임들은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과는 그래픽과 조작, 무엇보다 게임성이나 방향이 여러가지로 달랐는데 덕분에 게임에 대해 또 하나의 눈을 틔워주었다. 여기저기서 보고 해본 게임들 중에 기억나는 것을 꼽으라면...

 - 페르시아의 왕자 1(브로드번드, 1989)

 - 페르시아의 왕자 2: 그림자와 불꽃(브로드번드, 1993)

 - 범피의 아케이드 판타지(로리시엘즈, 1992)

 - 로터스 3: 얼티메이트 챌린지(그렘린 그래픽스, 1992)

오락실과 마찬가지로 이 외에도 더 있을 테고, 이후 집에 컴퓨터를 장만한 뒤에도 국내 사이트를 뒤져가며 DOS게임을 깔아서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바이러스 같은 것에 대해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다 보니 컴퓨터가 고장나기가 일쑤였지만. 게다가 내 취향에 맞다고 생각해서 검색한 게임을 막상 깔아서 해보니 취향과 달라 곧장 지운 적도 많은데, 아마 당시 게임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게이머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PC방이 점점 세를 불려 오늘날의 편의점마냥 여기저기 들어서면서 학생 게이머들을 진공청소기마냥 빨아들이든 말든, 점점 시대에 역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뭐 유행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했고, PC방에 몰려들었던 학생 게이머들을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바닥에는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라는 마법의 주문이 있으니까. 그저 내가 아직도 당시 PC방에 퍼진 게임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집보다 PC방을 더더욱 이용하게 된 건 천하제일상 거상(AK 인터랙티브, 2002)이 제정신(?)이었을 때, 그리고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넥슨, 2007)이 제정신(사실 이 때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이었을 때, 그리고 오버워치(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2016)의 붐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는 무렵 막차에 탑승한 때였다. 결국엔 스타크래프트 이후로 나를 끝끝내 흡수하고 말았구나, 블리자드. 잘 했어요, 짝짝짝!


다만 나도 발전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었다. DOS게임'만' 하는 것을 넘어 에뮬레이터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물론 문방구나 백화점에서 팔았던, 합팩과 다를 바 없는 게임 모음 CD란 것에 적잖이 '사기(!)'를 당하고 난 뒤였다. 잠깐 인터넷을 뒤지면 얼마든지 무료로 할 수 있었던 것을,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도 아닌 남의 것을 팔아서 부를 착복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선 오락실이나 DOS게임보다 풀어낼 썰이 더 많으니 나중에 따로 글을 써 보겠다.


나도 모르게 해적질을 돕다, 불법 다운로드와 PC 게임


그 때는 그랬다. 정품을 사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았고 정품을 사는 루트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 때는 그랬다. 정품을 사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 모두가 파일노리와 프루나, 당나귀, 우리 집을 포함해 아파트 한 동을 감염시킨 오버넷(이 이름이었던가?), 등등의 P2P를 칭송하며 알리고 다녔다. 그 때는 그랬다. P2P 사이트에 가입해 포인트를 내는 것마저도 아깝게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분할압축으로 시간이 걸릴지언정 무료 다운로드를 제공한 사람들은 영웅 취급을 받았다. 그 때는 그랬다. 모두가 해적이었던 것이다.


불법 다운로드의 역사와 그 만행과 파급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기사와 특집에서 다뤘으니 생략하겠다. 그렇다고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렇기에 이 일은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게이머들이 안고 가야 할 원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사실을 인정하되, 어떤 게임을 즐기고 어떤 점을 느꼈는지에 대해서만 집중하려고 한다.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경험은 역시 따로 글을 쓰겠다.)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접한 (엄청나게 많은!) 게임들 중에 인상깊은 것을 꼽으라면 역시 GTA 2(락스타 게임즈, 1999)가 아닌가 싶다. 그 게임은 여러가지로 나비효과라고 할 만한데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게임을 처음 봤고,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GTA자료실이라는 커뮤니티에 가입했고, 그 과정에서 외국의 정보를 번역하면서 번역가 노릇을 처음으로 시작했고, 그걸 통해 다른 게임의 한글패치 작업에도 참여하면서 지금의 반푼이 번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불법 다운로드는 불법이지.


어쨌든 나는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세상에 수많은 게임들이 있으며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온 격이랄까. 그래서 비록 죄가 크고 죄값을 받아야 마땅할 불법 다운로드이지만, 나는 불법 다운로드에게 잠시나마 감사한다. 악마와 계약했단 소리를 들을지언정 게임계를 보는 눈을 한층 틔워 주었으니까. 어쩌면 고전게임계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고전게임 전문 번역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종종 시간을 내서 텍스트가 많은 고전 어드벤처 게임의 번역을 돕고 있지만 말이다.


세상은 돌고 돌아 다시 고전으로, 인디 게임과 고전 게임


간격을 상당히 두고 쓰느라 앞뒤가 안 맞게 된 첫 번째 '오만한 생각'에서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인디 게임을 처음으로 알게 된 계기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몇몇 게임 전시회나 지스타에서 중소기업이나 대학생들이 만든 게임을 잠깐잠깐 접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변변찮은' 게임을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난다. 고전게임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을까.


인디 게임을 공식적으로 접했던 것은 2016년 BIC, 즉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이었다. 처음에는 이전에 알고 있었던 번역회사의 이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게임번역에 대해 조언을 구할까 했을 뿐이었는데, 거기서 인디 게임의 정의에 부합하는 게임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들의 개발 환경이나 마인드는 고전게임과 놀랍도록 흡사했다. 제로(0)에서 시작하는 개발 환경, 남들과는 다른 차별적인 개성과 시스템, 세상이 뭐라 해도 자신들의 특색으로 밀고 나가는 뚝심. 고전게임이 현역일 당시에 쏟아져 나왔던 게임들도 분명히 그랬으리라. 그와 별개로 나 자신은 게임 개발자가 아니었지만 어렸을 적에 게임을 접했던 그 상황과 충격, 무엇보다 '그리움'을 절절하게 느꼈다. (뭐, 과거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은 끝장이라지만 고전게임 시절로 돌아가자는 소리가 아니니까.)


나중에 글을 써서 좀 더 논리적으로 '오만하게' 털어놓을 예정이지만, 이런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니 인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혹은 몇 번이라도 고전 게임들을 접하고 연구해보길 권한다. 특정 고전게임이 명작이어서 그렇다는, 그런 과거의 유명세에 의존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 당시의 게임들은 개발 및 플레이 환경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현실적인 이유'로 축소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가능한 부분들이 있고, 그 시절에 먹혔다면 오늘날에도 분명히 먹히는 게임성이나 테마 등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쯤해서 근거나 사례를 들어야 논리가 서겠지. 고전게임을 한창 파고들며 연구하던 시절에, (어디까지나 뇌내망상이지만) '이런 게임들을 합치면 엄청난 물건이 나올 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던 사례가 몇 가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이러했다.

 - 로드 파이터(코나미, 1984) = 기본 시스템

 - 오버탑(SNK, 1996) = 기본 시스템, 시점

 - 크레이지 카즈 3 / 람보르기니 아메리칸 챌린지(타이터스 인터랙티브, 1992) = 간편 튜닝, 판돈 걸기

 - 스트리트 로드 2(캘리포니아 드림즈, 1991) = 엔진 분해 등 튜닝 묘사, 대결 신청, 판돈 걸기

 - 로터스 3: 얼티메이트 챌린지(그렘린 그래픽스, 1992) = 다양한 배경

이 다섯 가지를 합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비슷한 물건이 어느 순간에 나와 있었다. 바로 니드 포 스피드 시리즈(EA, 1994~)였다. 물론 내가 생각한 대로는 아니었고, 정확히는 내가 원했던 부분들이 몇몇 시리즈에 흩어져 있었다. 개발사가 제각각이라서 그런 건지, 세일즈 포인트를 다르게 잡은 건지, 높으신 분들의 입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는 내 생각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덧붙여 위의 내 생각에 가장 근접한 작품은 니드 포 스피드: 언더그라운드 2(EA, 2004) 혹은 니드 포 스피드: 더 런(EA, 2011)인 것 같다.) 물론 그 사람들이 해당 고전게임에서 모티브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고전게임과 비슷한 인디 게임 혹은 모바일 게임들이 제작되고 있을 것이다. 정확히는 내가 그 게임들을 고전게임에 끼워맞추는 격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갖다붙여도 말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고전게임에 의외로 오늘날에 써먹을 만한 요소가 많다는 사실을 반증하지 않을까. 과연 그 사람들이 게임을 한 번도 안 해보고 그런 아이디어를 내놓았을까. 꼭 게임을 개발하는 측면이 아니더라도, 어렸을 때의 감흥을 찾기 위해 고전게임을 한 번쯤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게임이 문화의 산물이자 문화의 집합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소니, 2013)가 영화 "시민 케인(1941)"에 비견되고 있다는 점은 하도 언급해대서 내가 말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고, 게임이 다른 대중매체로 발전되거나 그 역의 상황이 발생하는 등 게임은 서서히 문화요소로서 정립해 가고 있다. 높으신 분들의 근시안적인 삽질(!)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몇 번 넘어지기는 하겠지만, 게임은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쭈-욱.


그러면 나는? 나는 일단 게임 개발자가 아니다. 여기에 '아직은'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지, '엄밀히는'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게임(을 전문으로 번역하길 희망하는) 번역가로서 게임업계에 조금이나마 발을 디디고 있고,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노트에 적거나 SNS에서 떠들어 대고 있다. 상상력 자체는 돈이 되지 않지만 돈이 들지 않고, 입 밖에 내기라도 하면 어디선가 누군가가 실현해 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지분을 요구하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상상과 아이디어에서 명작이 태어난다면 그건 그것대로 엄청난 일이 아닐까?


확실한 건, 그렇게 되든 안 되든 나는 고전게임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최근에나 현재에 발매된 게임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고전이 될 테니까. 그리고 고전게임도 어느 순간 리메이크가 된다면 현역이 되어 고전 소리를 못 듣겠지. 결국 나는 언제까지고 게이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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