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ter's IMAO/게임 이야기

#1 - 게임과 나(1) : 문방구에서 TV 앞까지

Lester/이홍기 2018. 5. 22. 19:25
게임과 나(1)


작성 : 이홍기(http://blog.daum.net/zzang2314274)




게임과의 만남, 문방구 게임기

게임에 대한 나의 건방진 생각을 늘어놓기 전에, 일단 '내가 어떻게 게임을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털어놓는 게 올바른 순서일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게임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계기로 그러한 입장을 가졌는지를 해명해야 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내가 게임을 가장 최초로 접했던 때는 기억나지 않는다. 게임보이, 즉 테트리스가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는 흑백 화면의 중국산 게임기를 시초로 봐야겠지만 그것에 대해선 별다른 기억도 없고 풀어낼 이야기도 없다. 내가 오늘날의 '게임'이라는 이미지로서 만나게 된 최초의 '게임기'는 바로 문방구 앞에 있는 게임기였다.

자세히 얘기하자면 이사를 두 번 정도 하기 전의 아파트에서 철조망을 넘어(지금 생각해봐도 모르겠지만 저 멀리 문이 있었음에도 나는 항상 철조망을 넘었다. 철없는 시절의 모험심일까?) 도로를 건너야 나오는, 비디오 가게 앞의 오락기였다. 그 당시에는 게임의 이름도 몰랐다. 흰 옷을 입은 금색 긴머리의 남자가 날아다니고, 웬 할배가 싸우다가 갑자기 헐크가 되었으니까. 혹시 눈치챘는가? 그렇다. 그 게임은 바로 아랑전설 1편(SNK, 1991)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부모님한테 혼날 게 뻔하니까) 오락을 해 본 적도 없는 문자 그대로 순진한 녀석이자 구경꾼이었다. 그래서 지켜보기만 하다보니 그 게임과 관련된 추억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 풍경은 잊히지 않는다. 흡사 장기를 두는 어른들과 둘러서서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처럼, 게임기를 하는 아이와 둘러서서 그건 이렇게 하라느니 하며 훈수가 난무하던 아이들. 버튼을 연타하는 보너스 게임이 나오면 얼른 자리를 바꿔 솜씨를 선보이고 멋있게 퇴장하는 난타 전문가. 너무 오래 서 있다가 부모님한테 걸려서 끌려가는 불쌍한 아이. (나중에 따로 쓰겠지만) 지금은 오락실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이 문방구 게임기와의 악연(?)은 내가 이사를 하여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 때'까지는 아직 문방구 게임기가 게임업계의 현역(?)이었으니까. 그래서 비디오 가게 앞에 있던 게임기는 초등학생들을 타겟층으로 잡기 위해 문방구로 옮겨갔고, 문방구 사장님들은 나날이 성장하는 아이들의 실력을 압도하기 위해 극악무도한 설정을 적용했다. (나는 괜히 한국이 게이머 강국이 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이다.)

하지만 교육의 전당인 학교 앞에서 '놀음(?)'을 해서는 안 된다는 풍조, 많아진 자동차 때문에 길에서 게임기를 하기는 어렵다는 위험성 등등이 합쳐져 게임기는 문방구의 실내로 들어갔다. 구경꾼과 훈수꾼이 있는 것은 그대로였지만 게임기의 쇠락은 이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실내 특성상 자리가 비좁아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없었고,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다보니 '어둠의 힘(?)'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도 그 '힘'에 당해봐서 안다. 뭣보다 문구점보다 훨씬 다양하고, (비교적) 합리적인 설정의 게임기를 구비한 오락실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나는 문방구에 발길을 끊었다. 뭐, 필기구와 노트를 사야 할 땐 어쩔 수 없지만서도.

(무늬만) 게임 패키지를 눈 앞에서, 패미컴과 합팩

합팩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을 다시 앞으로 되돌려야 한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다시 이사를 간 곳은 절 아래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빈민촌인지 아닌지도 몰랐다. 집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아파트도 아니고 큰 길가에서 은근히 멀어진 곳이다보니 예전처럼 비디오 가게 앞 게임기에 찾아가기는 힘들었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인해 집에 형과 단 둘이 경우가 많아졌다. 그럴 때 부모님이 사주신 것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NES, 즉 패미컴이었다. 어머니 친구분의 집에 함께 놀러갔을 때,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시는 동안 나는 할 게 없어서 그 집에 있던 게임기를 잡고 "조용히" 놀았는데, 그걸 기억해 내시고 사 주셨으리라.

지금은 '대륙의 기상'이 뭔지 자~알 알고 있고 코웃음을 치겠지만, 그 당시엔 나도, 형도, 부모님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TV에 선 꽂아서 하는 게임기(나는 그렇게 불렀다)에 꽂아서 잘 구동되는 팩이라면 아무 문제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접한 것이 150-in-1, 즉 합팩이었다. 이 합팩이란 것은 당시 여러가지 NES 게임을 이름만 바꿔서 한 팩에 몰아넣은 것으로, 저작권 문제를 제외하면 놀랍게도 정상적으로 구동되는 '패키지'였다.

물론 저작권을 피하기 위해 제목이 사라지거나, 혹은 다른 게임인 것처럼 스테이지나 난이도 등 몇몇 설정이 뒤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인 원본은 약 10여 개였고 나머지는 죄다 개조판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재미만 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역시 나중에 따로 글을 쓰겠지만) 폭넓게는 우리나라의 뿌리깊은 불법복제, 나 자신에 한해서는 어렵다 싶으면 치트를 찾는 성격은 여기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개조판의 설정 덕분에 원본보다 쉽게 클리어할 수 있었으니까.

그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것이 지금도 생각나는 115번, 콘트라 NES 이식판(원작은 아케이드, 코나미, 1987)이었다. 합팩에 있었던 것들 중 가장 자극적이고 쌈박해서 가장 많이 플레이했던 것 같다. 하필 한 자리수인 원본이 아니고 115번인 이유는, 이게 시작부터 무적 상태(B)로 시작하는 개조판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원본보다 쉬운 플레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스테이지인 에일리언의 둥지에 가서는 식겁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생각해 보라, 그 나이에 에일리언이라니!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는 죄다 15세 이상 관람가인데!) 합팩에 들어 있던 다른 게임들도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지만, 지면 관계상 나중에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나와 게임과의 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이 NES(정확히는 합팩)인 것 같다. 가벼운 규모이면서도 들어 있을만한 요소는 다 들어가 있고, 밖에 나갈 필요 없이 집에서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팩 하나에 온갖 게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합팩 때문에 생겨난 잘못된 이미지이긴 했지만, 그것을 떠나서 다양한 가능성을 동시에 접한 것이 문화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특히 나중에 이사하면서 새로 구하게 된 합팩 64-in-1은 기존의 합팩에 비해 개조판이 매우 적고 다양한 게임들을 갖추고 있었기에 더 많은 다양성을 접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의 게임이라 지금 보면 우습긴 우스울 것이다. 하지만 구니스(코나미, 1987)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닌텐도, 1985)로 어드벤처를, 테트리스(텐겐, 1989)로 퍼즐을, 트윈비(코나미, 1986)B윙즈(데이터 이스트, 1986)스타포스(테이칸, 1987)로 슈팅을, F-1 레이스(닌텐도, 1984)로드 파이터(코나미, 1984)익사이트 바이크(패미컴, 1984)로 레이싱을 (이하 생략) 접했다. 게임계에겐 엄청난 재정적 손실이겠지만, 나에게는 게임의 다양한 장르와 무한한 가능성을 본 순간이었다. (이 게임들은 하나씩 주제로 삼아서 글을 써도 될 만한 명작들이지만, 지면 관계상 나중에 다루겠다)

그래서 나는 그 때부터 다양한 게임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때부터 게이머라기보단 게임 탐색광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엔 게임 잡지는 물론이고, 이 게임을 어디서 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조차 나눌 사람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합팩에 있는 모든 게임을 둘러보느라 눈 돌릴 틈이 없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리라. 그러던 사이에 한 번의 이사를 더 하면서 지금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접했다. 컴퓨터라는 것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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